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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나르시시즘 4탄 - 가면 뒤에 감춘 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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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글에 이어서 나르시시즘에 대한 네 번째 이야기 4탄입니다.

 

나르시시즘에는 

 

 

현실을 왜곡하는 마법적 사고 이상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오만

경멸 뒤에 감추는 시기심

가면 뒤에 감춘 수치심

제멋대로 자격 부여하기

끝없이 타인을 착취하기

경계를 침범하는 이기심

 

이렇게 7가지가 있어요.

 

 

 

이 글에서는 이 가운데 가면 뒤에 감춘 수치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지우는 오늘 친구와 같이 테니스를 치고 있습니다.

공이 자기의 라켓을 맞고 나가는 것을 똑똑히 느꼈습니다.

그 공이 백 코트 깊이, 베이스라인 바로 안쪽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지우는 공의 움직임을 따라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이 되었습니다.

지우는 속으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공을 보자. 측면을 잘 사수해서 쳐내고 끝내야겠어."

 

포핸드에 이어진 포핸드.

지우는 공격 리듬이 의식적인 통제 노력을 따라올 때까지 줄곧 주문을 계속 반복해서 되뇌었습니다.

잠시 동안이었는데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실수가 하나도 없는 최고의 순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속으로 짜릿한지 신이 났고 흥분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친구의 공이 코트로 날아들었고 지우의 라켓 테두리를 맞고 코트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습니다.

 

 

"지우 너는 그 스핀 절대로 못 읽을 줄 알았어!"

 

 

옆에서 경기를 구경하던 친구가 한 마디 했습니다.

절대로라는 말이 지우의 마음속에서 계속 메아리쳤습니다. 

 

갑자기 몸 안에서 타이어가 터져버린 느낌이 되었습니다.

 

고통이 휩쓸고 지나가고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지우는 무력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경기를 잘하기는 힘들겠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느낍니다.

 

연속으로 공을 맞받아 치지 못하면서 바보가 되어버린 듯한 대책 없는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우는 울음이 터질 듯한 느낌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내가 원래 그렇지 뭐.'

 

지우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중얼거렸습니다.

 

" 야. 또 무서워서 도망치는 거 아니야?" 하며 옆에서 약을 올리며 얘기하는 친구의 말에 마음속의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이제 다시는 테니스를 치지 않을 것이라며 생각합니다.

 

 

 

 

정신분석학에서 이것을 자기애적 상처라고 합니다.

겉에서 볼 때 이 상처를 덧나게 하는 원인은 너무나도 사소해 보이지만 정작 상처를 입는 당사자는 이 사례에서처럼 고통으로 초토화됩니다.

그냥 지나칠 만한 일들이 사실은 아주 오랜 상처를 파헤쳐 다시 벌어지게 합니다.

신뢰의 관계는 파장이 맞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즉, 옆에서 지우의 희열과 충돌하는 친구의 비난으로 깨져버립니다.

상처를 준 것도 모자라서 모욕까지 가했으니 지우의 친구는 지우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우의 예민함과 즐거운 상태의 갑작스러운 붕괴, 감정의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는 어려움은 모두 지우의 정신 깊은 곳에, 의식적인 기억 전 너머에 코드화되어 있는 아주 근본적인 경험에 맞닥뜨렸다는 것을 대신 말해줍니다.

 

수치심이란 감정이 강력하게 발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갖 감정들 가운데 수치심은 연령, 지위를 초월하여 가장 참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수치심은 죄책감과 달리, 잘못한 소행과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전반적인 인격적 결함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우리는 맨 먼저 엄마 또는 엄마에 버금가는 강한 애착으로 맺어진 존재의 눈에서 수치심을 경험합니다. 아이는 돌 무렵에 엄마에게 흥분 상태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와 그 기쁨을 나누기는커녕 얼굴을 찌푸리면서 "안 돼!"라고 꾸짖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엄마의 비난은 자신이 힘 있고 중요한 존재라는 아이의 착각을 단숨에 깨뜨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 착각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생애 초기에 엄마와의 결합에서 이끌어낸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아무 경고도 받지 못한 채 한순간에 이 낙원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우리가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나쁘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나쁜 것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사회화 경험을 통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때로는 그 반복적인 경험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정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을 회피하는 것으로 평생을 다 보냅니다.

최근 신경생물학계의 연구에서 아동의 사회화가 시작되는 무렵의 뇌는 강렬한 수치심을 느끼는 경험을 처리할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정적인 이 시기에 정서적으로 안정된 부모가 옆에서 따뜻하게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극도로 불쾌한 감정들을 조절하는 경로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그 여파가 평생 갑니다.

 

아이의 뇌가 적절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가 어린아이들의 뇌가 아직까지 감당할 수 없는 것, 즉 아이들에게 타격을 준 치명적인 수치심을 달래주고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옆에 있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어야 합니다. 

해결해 주려는 모드는 좋지 않습니다. 

기다려주고 부모의 품에서 머물게 해 줍니다.

 

만약 부모가 아이의 수치심을 달래주지 못한다면 아이는 자기 나름의 보상 수단을 개발합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해 벽을 쌓고 그 벽 뒤의 괴물과 자신을 분리하는 환상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자기가 특별하고 힘 있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매달립니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수치심이란 감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그 감정을 경험하지 않으려는 수단을 개발합니다. 심리학에서 이를 회피된 수치라고 합니다. 창피를 모르는 뻔뻔함 또는 양심의 부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 배후에 부인, 냉담, 비난 또는 분노를 차단하기 위한 벽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처리할 수 있는 건강한 내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못하기 때문에 수치심을 바깥으로 그러니까 자기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영역으로 추방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절대로 내 잘못이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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